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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은 강성 이슬람 지역인 데다가 한때는 주 정부에서 분리독립을 하려고 했던 곳이라 주민들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아직도 지나간 시절에 당한 고통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살던 집의 건너편에 젊은 선생님 가정이 있었는데, 남편 쪽으로 대학을 중퇴한 남자 동생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약간의 정신분열증 증세가 있어서라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갑자기 그 집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고함이 나면서 소동이 일어났다. 동생이 발작을 한 것이다. 소리소리 지르는 동생을 의자에 묶어놓고 진정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쉽게 끝나지 않았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터라 그 집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동생이 나와 같이 이야기를 하기 원한다고 하였다. 동생에게 다가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눈동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 눈에는 공포에 잔뜩 질려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코 속으로 기도를 하고 그 집을 나오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동생이라는 젊은이가 어렸을 때, 반군에 가담하여 싸우던 삼촌이 정부군에게 붙들려 가족들이 보는 눈앞에서 목이 잘려 죽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부터 분열증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만났던 청년은 바지에 오줌까지 쌀 정도로 무서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심리학자인 래리 크랩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감정은 안전감과 중요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안전하다는 감정이 우리에게는 꼭 채워져야 하는 것인데, 우리 인간이 이 감정을 잘못된 곳에서 찾다 보니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종교의 영이 이것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두려움의 영으로 가득 차게 하여서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의지의 대상을 찾게 하는 것이다. 의지의 대상인 신을 감동하게 하고자 하는 종교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며, 이슬람은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되었다. 

 

이슬람은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시작된 종교였다가 삽시간에 세계적인 종교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 부흥을 도와준 것은 기독교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기독교인들이 행위로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다른 종교들보다 더 못한 삶들을 살다 보니 기독교 지역에서 도리어 반기독교적인 운동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공식종교가 되면서 기득권으로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과는 거리가 먼 타락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땅을 소유하고 대대로 부를 누려왔던 많은 교부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 하기에 급급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여기에 식상하고 불만을 품고 있었던 눌린 자들이 도리어 이슬람이 들어올 때 두 손을 들고 환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식민지들이 반기독교적 운동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눌린 자들의 것으로 토착화시켜 갔다. 기독교 나라였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450년간 식민지로 있었던 인도네시아도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식민지를 담당하던 총독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도리어 이슬람을 장려하여 식민지 백성들의 환심을 사서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정책을 썼다. 

 

구소련이 지배하고 있었던 소위 스탄 나라들도 소련의 붕괴 이후에 모두 이슬람으로 돌아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지배자들인 기독교인들에게 식상하고 반발하여 취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을 이해하자면 이러한 정치적인 결과들을 이해하면서 좀 더 깊이 그들의 종교적인 부분을 알아가야만 그들을 품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종교적인 면에서 속 내용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몰몬교와 이슬람이 비슷한 양상을 많이 보인다. 성경 이외에 코란과 몰몬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고, 선지자 몰몬과 선지자 모하멧이 비슷하며, 기독교도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그들의 종교를 지킨 것이 더욱 그렇다. 미국의 유타주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것은 기독교도들의 핍박 가운데 몰몬교도들이 그들의 종교를 지킨 것에 대해서 너무나 자랑스럽게 또 감격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성령님이 주도하시는 선교에 동참해야 한다고 본다. 요5:19에서의 말씀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선교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종족 가운데서 준비해 놓으신 구속적 유비를 찾아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슬람과 접촉점을 가질 수 있는 Common Ground로서 코란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다만 처음의 접촉점으로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코란 속의 예수님이고 코란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케빈 그리슨이 쓴 “낙타 전도법”을 보면 좋은 인사이트를 받을수 있다. 이슬람이 인정하는 코란 속의 25명의 대선지자 중에서 기독교 성경에 나와 있는 선지자는 24명이다. 마지막 선지자인 모하멧만 성경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은 무슬림들도 코란을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면서 암송하고 되뇌었지만 1984년의 사우디 국왕이 코란을 타종족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공식화시키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코란 안의 예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자체 부흥을 위한 것이지만 도리어 이슬람 안에서의 예수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 주도하시는 선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선교사적인 삶을 말 그대로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으로 회심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무슬림들이 첫 번째로 꼽는 감동은 기독교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한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말과 삶이 일치하는 천국 시민의 삶이 그것인 것이다. 천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세상 문화의 삶을 보여준다면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를 쓴 스텐리 존스 선교사에게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당신네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은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인도인들도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이 훨씬 빨리 왔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서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도리어 그들이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천국 복음과 가르침과 병 고침을 이 땅에서 행하셨던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각자의 서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이 전방 개척 선교지이든 기독교 지역이든 관계없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만나는 영혼들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도록 중보하고 예배하는 일이다. 만왕의 주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이 땅을 회복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을 준비해놓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듣고 알아서 그것에 같이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같이 이루어 가는 것이다. 어떻게? 중보하고 예배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엄청난 은혜의 자리에 초청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중보하고 예배함으로써 장차 올 영광을 감격스럽게 조금씩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매일 경험하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기도의 자리요, 중보의 자리며, 예배의 자리인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전할 수가 있겠는가? 얼마 전 내가 있는 지역에 중보 예배팀이 와서 같이 지역을 한 바퀴 돌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각 지역에 주시는 중보와 예배를 하게 되었다. 전략적 접근지역에서 할 수 있는 단기 선교 활동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은혜와 감동이 있었는지 모른다. 경이롭고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것이 모든 지역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야 그곳에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일이 그 땅 가운데 풀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피로 거듭난 우리는 모두 오늘도 기도하면서 무릎으로 이 선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서 두려움과 공포, 억지 속에서 핍박받는 영혼들이 예수 안에서의 안전감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반목과 대립으로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우는 영혼들이 예수의 사랑 안에서 녹고 깨어져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이 땅에 주님의 일을 이루소서 하는 기도가 온 땅 가득히 퍼져갈 때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시는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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