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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독교 역사상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흥을 사모했다. 그리고 그 부흥은 그곳에 부흥을 사모했던 한 사람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웨일즈 부흥의 주역을 담당했던 리즈 하월즈와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드와 찰스 피니, 아주사 부흥의 윌리암 죠셉 시무어 등이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그런 부흥을 우리가 사는 땅에 어서 일어나길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흥은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처럼 자주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흥을 염원하며 소원하고 열망하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마지막 시대를 달려가고 있는 우리로서 부흥의 때를 더욱 간절히 꿈꾸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 부흥이 내 시대에 일어나지 않고 혹 그다음 세대에 일어난다 하여도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흥을 바라고 열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흥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풀어지는 때이고, 하늘의 문이 열리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지상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와 병든 사람들이 치유받고 살아나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와 같은 부흥이 우리가 섬기는 비타민 씨 종족에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가 그곳을 향하여 가기 전에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의 부흥을 일명 ‘영적 쓰나미’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 많이 받은 약속이 아니고, 우리가 섬기는 그 땅에 일어난 쓰나미를 보며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 중에 받은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이 부흥의 역사가 아모스에서 9:11-12를 통해 주어졌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아모스 선지자가 하는 내용으로서 사도행전 15:16-17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를 통해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인용이 되었다.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다윗의 장막의 비밀을 조금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던 모세의 회막도 아니고, 솔로몬이 지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성전도 아닌 다윗의 장막(텐트)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겠다고 하셨을까? 다윗은 자기가 사는 다윗 성보다도 초라한 장막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려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고 솔로몬의 때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진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여줌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솔로몬 왕 때 멋있게 지어지게 된다. 그 대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위해 장막을 친다. 다윗의 마음 안에 언약궤의 임재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그래서 다윗은 오벧에돔으로부터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 온 후, 4,000명의 레위인들을 세워 다윗의 장막에서 밤과 낮으로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들을 구성하였다. (:4, 23:5) 왜냐하면 다윗은 늘 하나님의 임재를 종일 사모하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를(dwelling place) 만드는 것이 그의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진리를 깨달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편 132:1-5를 통해 그의 고백을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를 발견하기까지 침상에도 오르지 아니하며 눈꺼풀로도 잠들지 않게 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를 향한 그의 열정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로 다윗의 열정이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염원을 이해하고 있었던 다윗이었기에 그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영광스러움을 얻는다. 

 

하나님은 출애굽 시대에도 모세와만 대면하고 싶어 하신 것이 아니었다. 모세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대면하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이다. 즉,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길 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매우 두려워하였다. “나는 너희의 여호와가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 의미이다. 하나님의 거 하시는 처소에 대한 이해를 하고 보니 창세기부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록까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열망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주실 때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분으로서 오셨다. 그리고 계시록 21:3에서 마침내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옴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분으로 그분의 열망을 만족하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또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거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곳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란 하나님의 쉐키나 글로리, 하나님의 무거운 영광의 임재를 뜻한다고 본다. 그래서 행 15:16절에 뒤에 다윗의 장막이 일으켜 세워진 후, 즉 하나님의 쉐키나 글로리가 그곳에 임하게 되는 때에는 그 남은 사람들과 모든 이방인이 주를 찾는 일이 자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쉐키나 글로리가 나타나면 그때는 주를 모르던 사람들이 그분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 문이 열리며 알 수 없는 무한한 영광의 임재로 인해 그들에게 회개가 일어나고 죽은 듯 엎드려지는 일이 벌어지며, 표적과 기사와 치유가 일어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흥인 것이다 일을 하나님 자신이 이루실 것이라고 아모스에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는 지금 그 일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부흥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우린 그저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일을 목격하길 원하며 우리의 일인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의 무거운 영광의 임재가 임할 수 있도록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예배로 중보로 그 처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의 영을 푸시고, 중보의 영을 더 많이 풀고 계신다. 이 시대에 많은 찬양 팀들이 예언적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혹자는 그 일을 유행이라고 표현하지만,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인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며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깨진 심령을 느끼며 중보로 풀어내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그토록 사모하며 열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나타나시고 임하실 것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땅, 비극의 땅이 아니고 죽은 자의 땅이 아닌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바라보며, 강하고 담대함으로 여호와를 기다리며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시 27:13-14)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통치를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을 바라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를 지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쉐키나 글로리가 그 땅에 임하길 간절히 사모하면서…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디에서 살든지, 우리가 살고 있는 그 땅에 이런 부흥이 일어나도록 간절히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 문이 열려 하나님의 공의가, 정의가 하수같이 우리가 사는 땅에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 땅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쉐키나 글로리로 임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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