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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를 돌아보게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날 때마다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을 사용하여 영적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모든 빛의 세력이 힘을 잃고 어둠의 세력이 세상을 온통 장악한 것 이 암울하게 되면 주님은 소수의 영적 지도자들을 통해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시어 그 땅을 살리셨습니다. 이런 부흥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회개함으로 정결함을 입게 되고, 거룩한 하나님 앞으로 서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 조지 윗휠드, 챨스 휘니 등의 부흥사들을 통해 영국과 미국에 일어난 부흥 운동이 그렇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 초에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났던 부흥의 운동도 하나님의 강한 임재 아래 일어났고 이로써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현시대가 매우 어두운 시기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세속적 가치관과 비정상적 윤리관이 정상으로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런 영적 부흥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갖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주님의 강한 임재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만져 주시면 우리의 문제가 주 안에서 다 녹아 질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 중에 부흥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흥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부흥’이라는 단어를 교회의 숫자적인 성장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흥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부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신도들이 울부짖는 광경을 떠올리며 상식 밖의 광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가 질서없이 무분별하게 드러나서 오히려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편견과 오해를 접고, 참된 영적 부흥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고 그 부흥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영적 부흥에 관한 좋은 예가 구약 요나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니느웨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좋은 설교 말씀을 듣고 몇몇 사람들이 감동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의 깊은 내면을 쪼개어 진정한 회개와 회심을 일으켰습니다. 왕으로부터 어린아이까지, 온 도시가 모두 회개하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 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부흥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각 개인에게, 각 가정에게, 각 교회에게, 각 도시에, 그리고 모든 나라에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하여 미국에서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 부흥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필수적인 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의 악함을 용서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정도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고집스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집스런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상한 심령’이었습니다. 요나서 2장에 있는 그의 기도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다에 던져지어 죽음에 이르렀던 그가 물고기에게 삼켜 져서 겨우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깊은 어둠과 고통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절박한 부르짖음을 올려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만을 바라보게 된 요나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며 그의 교만을 내려놓고 애통해하였습니다. 호흡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하며,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던 요나의 이 ‘상한 심령’을 주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고집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요나를 사용하여 니느웨의 부흥을 이루셨습니다. 이유는 바로 ‘상한 심령’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는 이들은 바로 이 ‘상한 심령’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 만을 바라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신다는 믿음 아래 인내하며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영적 부흥이 임하기를 우리보다도 더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의 임재 아래 ‘상한 심령’으로 엎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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