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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 들렀다.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노란 손수건처럼 색칠되어 진 책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라는 책이었다. 그 밑에는 "손해 보고 사는 사람들의 숨겨진 힘" 이라는 부제가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독일의 칼럼니스트인 슈테판 클라인이 쓴 책이었다. 제목부터가 흥미로워서 내용을 훔쳐보다가 결국 2권을 샀다. 한 권을 그 날 만나는 장로님께 선물로 드리고 다른 한 권을 가방에 넣어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책을 마치지는 않았어도 감이 잡혔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읽다가 느끼는 것은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성경을 훔쳐보고 그 진리들을 자기 말로 각색하여 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안에 너무나도 성경에서 말하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일상생활 가운데서 이타적인 삶을 사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작은 봉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남을 돕는 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한다. 줄을 서서 기다려 주고, 물에 빠진 자를 구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생각지 않고 뛰어든다. 이러한 용기도 이타적 삶이다. 철길에서 사람을 구하다가 죽은 이들의 사건도 종종 신문에 실린다. 사람의 본성 가운데는 이런 아름다운 이타성이 있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거나 손해 보면서도 잘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타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말한다. 이런 원리가 성경에 이미 수없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책을 빌미로 해서 성경의 진리를 나누기를 원한다. 성경은 이타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타적 삶을 말하고 있다. 

 

본훼퍼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순간 남을 위한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바로 이때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 남을 향해 떠나는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자신의 직업에서 떠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오른뺨을 때리면 다른 편 뺨을 돌려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을 행해야 한다. 알려지면 안 된다. 완벽하게 손해 보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주님이 가르치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데로 남을 대접하라고 우리에게 황금률을 가르쳐 주셨다. 남을 나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남의 일을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이해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타주의 반대가 되는 이기주의에 쉽게 길들여져 왔다. 어릴 때부터 들은 말을 "공부해서 남 주니?"라는 말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채찍으로 많이도 얻어맞으며 세뇌를 당해 왔다. 그러나 성경은 "공부해서 남 주어라"라고 말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 교수가 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난다. 부유한 나라들이 잘살게 되면 남의 나라가 자기 나라를 따라오지 못하도록 그 길을 걷어 차 버린다고 한다. 그는 그 책에서 이러한 큰 나라들의 비열함을 꾸짖고 있는데 나도 동감한다. 우리말 속담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경제 원칙상으로 본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슈테판은 손해 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힘이 있고 그 힘은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기주의자가 잘 살고 잘 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이타주의자가 더 잘 살고 더 큰 성공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슈테판이 말하는 이타는 일반 은총 안에서 인간미 휴머니즘적인 삶을 살아가는 형태 속에서 얻은 진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에서 반드시 성공하는 성경적 진리는 모르고 있다. 조정민 목사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둘이 서로 죽도록 싸우면 둘이 다 죽고 둘이 죽도로 사랑하면 둘이 다 산다."고 말한다. 봉사를 늘 받는 사람보다는 봉사하고 사는 사람이 늘 행복하게 되어 있다. 헌금하지 않고 감추어 둔 사람보다는 최선을 다해 헌금하는 자가 복이 있다. 성경에서는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칭찬하고 있다. 그 여인은 옥합을 깨뜨림으로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아깝게 생각한 유다는 결국 자신을 자살로 몰아넣고 말았다. 

 

진정한 이타주의는 성경에서 발견해야 한다. 선교사는 어쩌면 가장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윌리암 부스는 말하길 "나를 구원한 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여행에서 장로들을 불러서 작별하였다. 멜리데 항구에서 눈물의 이별을 하며 마지막 권고를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하였다.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더 낫다." 그는 선교사였기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받기보다 주기를 더 잘했다. 목회자의 심정이다. 바로 주님은 이 이타주의의 최대의 인물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의 목숨을 내놓았다. 십자가에서 모든 이의 죄를 위해 저주의 몸이 되었다. 그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참 목자였던 것이다. 이타주의 최고의 선은 "희생"이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이타주의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많은 군인이 이타주의자들이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많은 사람이 이타주의자들이다. 많은 봉사자가 이타주의자들이다. 남을 위한 배려도 이타주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은 남의 영혼까지 염려하고 배려하지는 않는다. 영원한 삶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자연적 원리로서의 이타주의자들이다. 매우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생명은 없다. 

 

그러나 선교사는 이타주의자가 아닌 이타의 영웅들이다. 남을 위해서 이 땅을 철저하게 버린 자들이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타인을 위한 생각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자신의 본업을 버린다. 사도들의 모습이 이 이타주의의 샘플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감격 때문에,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고, 가족을 떠났다. 세상의 따뜻한 아랫목 대신에 불편한 삶을 택했다. 타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이타주의자들 중에 최고의 이타주의자이었다. 그러나 결코 자신을 이타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힘이 주님에게서 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고린도전서 9장 29절에서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종 된 것을 선포하였다. 남을 위해 철저한 이타주의적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상도 기대하지 않았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타주의적 사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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