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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창세기를 읽다가 이 말씀을 대하게 되면 새로운 감동이 가슴에서 올라온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숫자를 그려본다. 얼마나 많은 자손이 증식되면 이별들의 숫자만큼 될까? 하나님께서 과장법을 쓰신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해본다. 진심이시라면 과연 이 일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정말 황당하게 들릴 것이다. 

 

<자연 속에 담기 하나님의 약속>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을 보려면 문명의 별빛으로 가려지지 않은 땅에 가보면 된다. 우리가 15년 살았던 감비아 땅이 꼭 이렇게 생겼다. 칠흑과 같은 캄캄한 밤에 쏟아지는 별빛들, 하늘을 온통 뒤 덮은 은하수의 끊임없는 행렬... 껌껌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꽉 차 있는 별들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하나, 둘, 셋, 도저히 셀 수 없다. 은하수가 되어 집단으로 모여 있어서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냥 입이 벌어진다. 매일 밤 그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오늘은 또 다른 새로운 빛으로 하늘을 메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막연하지만 미래에 이루어질 무한한 숫자의 자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곤 했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속삭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늘 상기할 수 있음이 선교사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그런데 별은 멀어서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모래는 매일 매일 사방에서 볼 수 있다. 모래는 손으로 쥐어 볼 수 있고 손바닥으로 비빌 수도 있다. 모래가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감촉을 통해 무한의 숫자를 더욱 피부로 느끼게 한다. 한 줌에 담긴 모래도 사람의 머리로는 셀 수 없는데 주님이 말씀하신 그 바닷가의 모래의 숫자를 과연 누가 셀 수 있을까? 

 

<참으로 자유한 영혼들이 믿는 약속> 
75세가 된 아브라함을 별빛 쏟아지는 밖으로 불러내어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주셨다. 자식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은 유목민으로 천막생활을 했다. 저녁이면 시원한 밤바람을 쏘이려고 밖으로 나오면 그의 눈앞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별들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그 별의 숫자는 절대로 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니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컸을까? 그 비현실을 현실로 믿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얼마나 귀하게 보셨을까를 상상해 본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조성이라고 일컬음을 받았고 열방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들에 이은 이 약속의 능력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는 바보,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웅> 
이 황당한 말씀을 믿고 불가능에 도전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바보취급을 당하였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교회로부터 반대에 부딪히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애처로운 눈총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잠시 잠깐의 행복과 사람들의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험난한 인생을 택했다. 기독교 역사는 황당무계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믿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보면 항상 위대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사람의 결단과 하나님의 시간이 만난 것이다. 목숨을 걸을 만한 가치를 발견한 그 한 사람은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고 그 일에 뛰어들었다. 절대로 많은 사람이 역사를 기록해 가지 않았다. 대중이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교회 회중들이 협조하거나 말거나 고독한 행진을 하였다. 아브라함도 혼자이었다. 철저한 고독함이 그를 휩싸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데 큰 상관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믿음으로 이 약속을 택했다. 그리고 그 고독한 영웅은 세상에서는 비교될 수 없는 그 가치를 알기에 불평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단을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 나라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현실감 있게 믿고 발을 떼느냐 않느냐에 따라 영적 세계의 축복이 달라진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 
근대선교의 문을 열었던 19세기의 믿음의 영웅인 윌리엄 케리(1761-1834)는 마치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땅의 모래의 무한성을 믿으며 무한도전을 했던 선교사이었다. 윌리엄 케리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소년 시절부터 개방된 마음과 탐구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세밀하게 모든 지식을 받아들였으며 항상 지식욕에 불타는 근면한 노력가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항상 배움에 대한 특별한 애착과 노력을 평생 기울였다. 

 

<자연을 사랑한 성실한 노력인> 
그는 특별히 자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구두 수선공으로 12년이나 생계를 유지했다. 그가 구두를 수선하면서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를 상상해본다. 아마도 구두를 신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라고 축복기도를 드렸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는 집 뒤뜰에 꽃을 가꾸고 곤충을 채집하는 등, 창조물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살았다. 캐리는 일을 하면서도 옆에 성경을 펴 놓고 틈틈이 성경을 읽으며 성실히 일했다. 어느덧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고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책을 읽고 연구하며,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불어, 독어 등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20여 개의 외국어를 더 배웠다. 비록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그의 옆에는 항상 책이 펴져 있었다. 캐리는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의 꿈과 비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선교로의 부르심> 
23세가 되던 어느 날 쿡선장의 「마지막 항해」라는 책을 읽으면서 케리는 선교사로서의 부름을 받았다. 선교를 위한 책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와서 우리를 도우소서”라는 마케도냐인들의 외침을 들었고, 주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지리공부를 하려고 자료를 준비하다가 전 세계 선교 현황에 눈이 뜨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도 선교사로서의 첫발을 디디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 자신이 만든 세계 지도에 각국의 인구, 종교 등 새로운 정보들을 기록하였고, 사람들이 도움을 호소하는 그 지도가 케리의 기도제목이 되었다. 당시 영국은 켈빈주의 영향으로 구원받을 자들은 하나님께서 벌써 구원하셨다는 이론으로 선교에 무관심하였고 선교는 초대교회의 사역에 국한했다. 그러나 케리는 용기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그의 지도에 각국의 면적, 인구, 지리, 종교 등의 정보를 실으며 이러한 교회 목회자들을 깨우기 위해 케리는 선교를 역설하였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림> 
그는 늘 창조적인 열정과 탐구심으로 성경을 공부하며 이국 대륙에서 인디언 선교에 일생을 바친 선교사들의 일기를 탐독하면서 선교의 열정을 키웠다. 그가 1885년도에 쓴 짧은 논문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수단을 취해야 할 기독교인의 의무에 대한 연구" 를 통해 미전도종족 선교의 필요성을 교회들에 알리었다. 그의 연구 논문의 발행일을 개신교 선교의 근대적 기원이 시작되는 날짜로 정하고 케리를 현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는 영국을 떠나 인도와 결혼하였다."  

특별한 인내심과 믿음을 가진 캐리는 복음 전도, 언어학, 자연과학, 교육의 실천과 진보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지만 본국으로부터의 외면과 비난 재정적 궁핍, 자연재해, 가족의 비협조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믿음을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안식년이나 휴가를 가져 본 적이 없었으며 "나는 영국을 떠나 인도와 결혼하였다."고 할 정도로 인도를 사랑했다.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지 25년이 지난 1818년 무렵에는 약 600명이 세례교인들이었고 수천 명의 교인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교회 지도자들과 복음 전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1819년에 세람포 대학을 세운 것을 위시해 백 개가 넘는 초, 중, 고등학교를 세워 교육과 선교를 병행하였다. 그의 업적은 인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외적으로 런던 선교회,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 선교회, 네덜란드 선교회, 교회 선교회, 영국 해외성서공회, 미국 해외 선교위원회, 미국 침례교 선교협회, 미국 성서 공회가 창설되어 현대 선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부흥하고 있는 인도 교회> 
윌리엄 케리가 시작한 인도선교는 지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회가 탄생하고 있다. 13억 가까운 인구에 기독교인의 수가 거의 6%에 육박할 정도로 부흥하고 있다. 인도 내 미전도 종족은 2223개로 집계된다. 인도인 자국 선교사들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71년까지 20개에 불과하던 인도 선교단체는 현재 200개가 넘는다. 세계기도정보는 인도인 자국 선교사가 8만 명을 넘었다고 집계했다. 
윌리엄 케리는 1834년 6월 9일에 73세의 생을 마치고 하나님 품에 안겼지만, 하늘의 별처럼 모래처럼 수많은 영혼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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