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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 보이게 드러났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말씀에는 실력이 있었지만 그 말씀을 삶 속에 바로 적용하는데는 실패했다. 주님은 이러한 위선을 날카롭게 책망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사람들 속에 거하셨다.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영적인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완전한 진리가 우리 가운데 거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영역이다. 인간인데 말씀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거룩함과 순전함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연약한 인간들에게 그럴 수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 육신으로 태어났다. 존귀함과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이것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선교사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현지인 속에 거하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습관과 풍습을 내 것처럼 느끼고 사랑할 때 진정한 성육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일지라도 이 땅의 문화와 이 땅의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30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하셨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와 세계관을 가지신 분께서 제한적인 인간 속에 들어 오셨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경배 받고 있는 예배와 찬양...완전한 아름다움과 진리만이 거하는 세계를 등지고 이 땅에 내려 오신 것이다. 성육신 해야만 자신의 미션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사는 종교인들, 병자들,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이 방법 외에는 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거할 방법이 없었다. 인간의 생노병사를 철저하게 짊어지셨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과 동일시 되고 인간의 죄를 짊어 질 수 있었다. 자신의 가르침이 절대 위선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소리 없이 가셨다. 

 

예수님은 생명이지이만 값으로 따질 수 없다. 돈으로 살 수도 없는 유일한 것이다.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선교사는 당당하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가난해도 좋다. 어떤 두려움과 핍박도 이길 수 있다. 선교사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신 주님께 우리 선교사들은 위로 받을 일도, 자랑할 일도 없다. 그 길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온전한 성육신은 순종이다. 모험이다. 도전이다. 십자가다. 보통의 시스템과 상식을 뛰어 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갖고 컨퍼런스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이 자랑스럽다. 하나님 나라의 계급장이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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