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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시들지 않는 사랑으로 끊임없이 남을 돕고, 기도하며, 말씀을 전하고, 제자를 만들며,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대 위임 명령을 완수하는 사람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특별히 목사나 선교사들에게만 이 일을 하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선교사이던지, 평신도이던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그리스도인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는 어두운 세상 가운데에서 뽑혀 하나님의 군대로 강제 징집된 것과 같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알려져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세상의 기대를 뛰어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는 사람으로, 모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동역자로, 세상을 밝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살아내어야 한다.
기도하고, 암송하고,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토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전부인 것처럼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처럼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씌어진 중요한 목적을 완전히 놓친 것이다. 성경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창문과 같다. 우리는 그 창문을 통해 하나님이 그들의 삶 가운데 육신으로 드러나도록 그들이 어떻게 증인으로 살아가는지를 보게 한다. 우리는 그들에 관한 스토리만 알면 안되고 함께 그들의 삶을 우리 안에 구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공부하는 학자로 남아서는 안되고 예수님의 생활 습관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공부함으로 성경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성경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
중국을 떠날 때, 그동안 함께 말씀을 나누던 우리 팀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였다. 우리의 비전, 선교 완성을 위한 특별한 목적들, 함께 나눌 토픽을 위한 커리큘럼과 실천해야 할 내용들을 6장의 문서로 명확하게 남겼다. 그들이 영혼을 향한 부르심과 선교사적 마음을 잠시라도 잊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심지어는 잊어 버리게 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책망을 들은 것은 믿는 자로서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향한 진정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비, 정의, 믿음같이 우리 안에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일을 하기를 꺼려한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리더를 따라가야 한다.
연합기도모임도 중요하고 교제도 매우 중요하다. 금요 집회나 주일에 2시간의 예배나 새벽기도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헌신 만으로 만족하면 안된다. 우리가 편안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나아가면 예전에 그렇게도 중요했던 것이 갑자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님이 주신 미션을 수행하기 시작한다면 그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만 지니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 그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멍청하게 살고, 재미없이 살고, 허구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리더를 따라가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세상에 나쁜 제자로 보이거나, 나쁜 리더로 보일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가치 없는 분으로 세상에 보여지는 것을 절대로 원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실성을 되찾아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삶아야 한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 말씀을 살아드리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교적 생활 습관을 완전히 버리라고 부르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에 두었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진정성이 회복될 것이며, 주님을 위해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두고 떠날 때, 선교의 대 위임을 명하시며 제자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을 맡기셨다. 그의 비전은 모든 종족들이 복음을 듣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4:14) 제자로 살고 싶은 우리에게도 주신 이 명령은 결코 부담이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 명령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신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계속적으로 뜨겁게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예수님은 잔인한 노예의 주인이 아니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영향력을 주는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정확한 재료를 주시고 계신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상급을 받게 하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열정이다. 그는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속 좁은 사람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 대신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 멸망 당하는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는 기쁨을 발견하기를 원하신다. 이는 단지 우리가 복음을 나누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제자들이 되어버린 우리에게도 매우 유익하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보장된 약속이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온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분이시다. 성령님의 모든 열매를 넘치게 지니셨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실천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이 성령님의 불 덩어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이것이 성령 충만이다. 예수님은 대 위임 명령의 끝에 이렇게 덧붙이셨다. “시대의 마지막까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것은 조건부 약속이다. 우리가 모든 종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명령한 데로 그들을 가르칠 때, 그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이것이 보장된 약속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부터 자유해야 한다.
하나님의 대 위임 명령을 실천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까?”, “새로운 블록 버스터에 무엇이 나왔을까?”, “TV 쇼에 어떤 새 배우가 등장할까?” 등등의 세속적,인 언어와 생각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무엇인가를 실천해야 하는 우리를 뒷걸음 치게 만든다. 우리는 날마다 세상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 매 순간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초점을 그에게 고정시켜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는 고백으로 우리의 충성심을 매일 재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고백 만으로 심판 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성경은 말 뿐만 아니라 주님을 거슬리는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심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존경심을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경솔히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의 발 앞에 우리 삶의 기름을 부어드려야 한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저녁에 초대했다. 그는 귀한 손님을 존경할 때 발을 씻고 그 발에 키스를 하고 그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베다니의 마리아는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녀의 가장 비싼 소유물인 옥합에 담긴 향유, 1년간 벌어야 구입할 수 있는 값비싼 기름을 예수님의 발 위에 부어 드렸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분이었다. 그의 발에 키스를 하고 자신의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림으로 최고의 존경심을 표현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만약에 우리가 바리새인의 집에 손님으로 초청을 받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예수님을 무시했던 바리새인 시몬처럼 행동하였을까? 아니면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그의 발에 자신의 모든 삶을 부어 드렸을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고, 왕을 존경하기 위해 하는 행위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을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예수님을 높이 세우고자 적극적으로 행동했는가? 예수님의 명령을 즐겁게 지키며 얼마나 자주 예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렸을까? 

 

그리스도인은 행동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2018년이 시작되었고 또 다시 새로운 결심을 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의 진정성을 닮고 살아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주님께 기도드린 작은 것들과 큰 것들을 행동에 옮기고 살아간다면 우리를 통해 세상이 변화될 것이며 땅 끝의 백성들이 기쁜 소식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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