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칼럼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인사 드립니다.  저는 네팔 김창근 선교사로서 현재 8년차 사역 중에 있습니다. 

 

네팔의 중심에 자리잡은 힌두교
힌두교는 세계 4대 종교 중의 하나로, 4천 년이라는 역사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도와 네팔의 모든 영역 속에 큰 영향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총 힌두교인의 80% 이상이 인도와 네팔에 살고 있습니다. 문화와 종교가 서로 뗄 수 없는 강력한 밀집력을 가지고 있는 힌두교는 주민들의 정신 세계와 실생활의 모든 영역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무려 3억 3천 만의 신들을 섬기고 있으니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힘들고 어려운 나라입니다.

 

지진대 중심에 있는 네팔
네팔에 와서야 네팔이 지진층의 중심에 있고 80년 주기로 대지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간에는 그 주기가 곧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대지진을 준비해야 한다고들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지진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오래된 건물들이 수두룩하고 신축 건물들 조차도 지진을 대비해 건축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지만 늘 하나님께 맡기고 사역을 해왔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중간 중간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불안한 감정과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교차하면서 이 땅에는 안전지대가 없음을 고백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사역을 했습니다. 

 

대지진 앞에 서 있는 선교사
2015년 4월 25일 11시 50분경, 현지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전 기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뒤틀리며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안과 초조함이 몰려 오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간에 잠깐 잠깐 멈추는 것 외에는 1시간 가량 계속해서 땅이 뒤흔들렸습니다. 새로 들어오신 박한철. 문찬식 선교사 가정과 예배를 드렸는데 선임으로서 이들을 데리고 나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순간이나마 매우 난감했습니다. 현지 교인들을 두고 저희만 살자고 나갈 수 없었습니다. 평소 동고동락 하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전했던 말씀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드린 예배
현지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은 예배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도 그들의 결단을 보며 그들과 함께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사실 그 시점에서는 이것이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죽음의 경계선에서 인간의 본능을 초월한 결단이었습니다. 

 

1만 2천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 지진
대 지진으로 인해 무려 1만 2천 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고 제가 사역하고 있던 산악 지역인 신두팔촉 지역은 무려 4,300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지진 3일 후 산악 교회의 형편을 보려고 올라가는데 길 건너 한 집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현장을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산악교회 교인들 도중에서 4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의 현장은 정말 제가 평생에 본 것들 중 생지옥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어 거의 두 주간 가까이 마당에서 세 가정이 함께 지냈습니다. 

 

구호 사역으로 주님의 사랑 전달
저희의 상황을 추스릴 경황도 없이 곧바로 구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산악의 깊은 지역은 쌀을 받지 못해 일주일간 굶은 주민들도 있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구호 사역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좋은 감정들이 생겼고 사실 구호로 인해 산악교회에 힌두교인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로 찾아오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거의 매주 산악을 다니다보니 체력도 떨어지고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노라 기도하면서 구호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건강의 어려움을 딛고 교회 재건축
건강의 적신호기 와서 “더 이상 주님 계속하기 힘듭니다. 이제는 잠깐 쉬어야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응답을 주시어 다시 힘을 내어 무너진 교회 재건축을 계속 감행했습니다. 1년 반 동안 구호사역과 교회 재건축등을 하면서 모든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위기에 대한 준비도 없었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 위기를 잘 이긴 것은 후방에서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사랑때문이었으며 하나님의 선한 인도 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종교 개종 금지법으로 인한 압력
네팔은 지진 이후 5개월째 종교 개종 금지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인도에서 압력을 넣어 국경을 폐쇄하고 평소 물자의 80%를 네팔에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거의 5개월동안 물자를 구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지진 때문에도 힘든데 헌법으로 인한 물자 공급 때문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정말 이중고를 경험한 것입니다. 

 

종교 개종 금지법으로 인한 긴장감
대 지진 후 2년 반이 지났습니다. 지난 10월 16일, 종교개종금지법이 대통령의 사인을 받아 2018년 8월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민사법이 아닌 형사법으로 고발을 당하면 3주 간의 조사와 함께 사실일 경우 내외국인 모두 동일하게 2년 형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의 왕정이 물러난 이후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종교에 대해 문을 열어  기독교가 크게 복음화 되었는데 0.7%이었던 기독교 10년 사이 3%로 크게 증가된 것을 정치권에서 제재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시행되는 내년부터 복음을 전하는데 크게 위축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기를 통하여 네팔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현재보다 더 절실하게 기도할 것입니다. 그동안 복음을 자유스럽게 전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나태하고 헌신의 삶이 부족했던 네팔 교회가 더 강하게 일어서리라 믿고 있습니다. 

 

지혜롭게 복음 전파에 매진
큰 바위와 같은 힌두권에서 복음을 지속적으로 전하려면 지금보다도 더 큰 기도와 헌신의 결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도 현재까지는 전방에 서서 적극적으로 선교를 해왔는데 앞으로는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선교사님들과 헌신했던 현지 복음자들이 있었기에 생각지 않게 공산당이 집권을 하면서 짧은 기간에 복음을 크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과거를 상기하면서 절망과 실망하지 않고 기도로 이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오지 산악 지대에도 M2414의 열매를 기대
제가 만나고 있는 네팔의 젊은이들은 현재의 상황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치적으로 이들이 풀수는 없지만 기도로 풀 수 있다는 믿음을 보면서 많은 힘이 됩니다. 앞으로 네팔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늘 제 마음 속에는 M2414를 기억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서 저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 마음은 저만이 아니라 함께 수고하고 있는 박한철. 모니카. 문찬식. 김희정 선교사들도 동일한 마음일 것입니다. 계속해서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오지 산악은 평생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저희가 이 땅에 있는 존재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맥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거민들의 삶은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복음조차 듣지 못한다면 이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 앞에 서있는 선교사의 결단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산악에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녔던 한 학교는 학생이 420명 정도였는데 지진 당일 50명의 아이들이 생을 달리했습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죽음이 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삶이 다하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결단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