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칼럼

미국에서 국제 컨퍼런스와 관련한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현지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아내와 아기 빈이는 며칠 전 발견된 잠복고환 수술 때문에 급하게 한국으로 먼저 떠났고, 남은 가족 3명은 귀임하는 비행기 티켓을 연기하려다 바꿀 수 없어, 원래 예정대로 떠나려고 짐을 다 싸 놓은 상태였다. 씻고 자기 위해 샤워실에 들어간 큰 아들 선이가 폭발해 버렸다. 자기는 모리타니아 돌아가기 싫으니까, 여기 미국에 남겨 두고 가라고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도 없고, 빈이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아야 되고, 남은 우리는 이 많은 짐을 들고 비행기 3번을 갈아 탄 후 무사히 귀임해야 하는 시점에,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헤쳐 나가야 하는데 얘까지 왜 이러나 싶었다. 아들을 나름대로 달래어 보려고 우리가 모리타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와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부르심 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이 상황에서는 별 효과가 없었다. 

“모리타니아에는 레고도 없고! 홈플러스도 없고! 쓰레기 더미만 있고! 맨날 정전되고!(야! 가끔씩 정전되지 맨 날은 아니잖아!), 맨날 차 고장 나고!(차 고장 나면 내가 고치지 네가 고치냐?!), 재밌는 것도 없고!(사막 모래 언덕에서 신나게 썰매 타며 놀 때는 언제고!)” 등등 모리타니아에 관한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괄호 안은 아빠 속마음).

그런 다음에는 아들의 원망이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불공평해요! 미국에서 살 수도 있고, 한국에서 살 수도 있는데 왜 우리만 모리타니아에 살라고 하는 거에요! 부르심이고 선교고 뭐고 다 필요 없어요! 다 소용 없어요! 나 모리타니 안 돌아 갈 꺼야! 나 여기 혼자 놔 두고 가세요! 으아, 엉엉엉”
이렇게 울며 소리 지르는 아들을 안고 나도 마음이 힘들어서 “하나님, 이 아들의 마음을…”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아들은 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아빠! 듣기 싫어요! 기도하지 마세요! 그런 하나님께 기도해 봐야 무슨 소용 있어요!” 더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예전 20대 때 YWAM에서 DTS 훈련 중에 내적 치유 받을 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원망 섞인 부르짖음을 들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그리고 어쨌든 자기 딴에는 힘드니까 소리치는 아들의 마음을 생각할 때 나도 괴로웠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신다. 우리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숨길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이런 부르짖음을 긍휼과 오래 참으심으로 듣고 계신다.
“왜 우리만 모리타니아에 살아야 하는 거에요! 그 못나고 못난 모리타니아에~엉엉엉”

‘못나고 못난 모리타니아…’ 아들이 내뱉은 이 말이 마음에 저려왔다. 그래, 아이들은 솔직하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하면 모리타니아는 사실 잘난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한편 그런 못나고 못난 나라에 태어나 평생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모리타니아 사람들이나,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말이기도 하다. 때로는 모리타니아 현지인들 스스로가, 우리 사는 삶이 “Sauvage”(야만의, 개화되지 못한)같다고, 농담조로 자조적인 표현을 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모리타니아는 남한의 10배 되는 광대한 국토를 갖고 있지만, 99%는 사막이고 농경이 가능한 경작지는 1%에 불과하다. 이 넓은 땅에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약 380만, 국가 전체 GDP가 50억불이 채 되지 않는 영세하고 취약한 경제 규모이다(1인당 GDP 약 1,300불). 광업과 수산업, 목축업 등 1차 산업과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당시, 정해진 수도가 없어서 그냥 지금의 누악쇼트 도시를 수도로 정해 버렸다. 그렇기에 계획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구 프랑스령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래도 수도는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들었다. 프랑스가 식민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수도는 도시 계획을 통해 어느 정도 도로/상하수도/행정 시스템 등을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반면 모리타니아는 나라 전체가 거의 사막이다 보니 그냥 대충 던져 놓고 지냈는데, 독립했다.

그래도 이란,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과 더불어 세계에서 몇 안되는 공식적인 이슬람공화국 중 하나이며,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다. 국민의 99.9%가 수니파 이슬람을 따르는데, 신비주의 수피즘 및 주술과 미신이 섞인 민속 이슬람 영향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아랍-베르베르계 백인 지배층이 흑인 노예들을 가정과 일터에서 부려온 노예 제도가 1980년에 와서야, “법적으로 공식” 폐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많이 개선되어 왔으나, 피부색과 직능에 따른 전통적인 카스트 제도와 사회적 신분의 구별 및 차별은 상당히 남아있다.

이 모리타니아에 우리 부부가 첫 발을 디딘 것은 2007년 북아팀의 아부지 정탐 때였다. 프랑스를 거쳐 모로코, 서부 사하라, 모리타니아를 약 40여일 동안 돌아다녔던 스릴 넘치는 여행이었다. 북아팀은 서부 사하라의 사하라위족을 포커스하고 있었고, 40여일의 여행 기간 중 모리타니아에서 보낸 시간은 열흘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부부에게 모리타니아로 부르심을 주셨다. 개인적으로 주신 주님의 부르심은 참 부드럽고도 인격적이었다. 모래 바람이 불어치는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로 난 길을, 토요타 하이럭스를 타고 통과하고 있을 때였다. 주님께서 성령님의 내적인 감동을 통해 두 번을 물어 보셨다.

첫 번째 물음은 “Do you love me?” 였다. 쑥스럽고,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고 더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말씀 드렸다. 며칠 후에 다시 사막길을 달리고 있을 때, 주님은 다시 한 번 물어 보셨다.
“나와 함께 이 곳으로 올 수 있겠느냐?”고. 주님과 함께 면 어디라도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에서 모리타니로 곧 바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과 부담이 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프랑스 샤또 블랑(1년 반, 불어 학습과 팀빌딩)과 서부 사하라 라윤(2년 반, 하싸니아어 학습과 팀사역)을 징검다리처럼 디딘 후 2015년 초, 드디어 모리타니아에 들어오게 인도하셨다. 훈련도 받았고 언어도 배웠고, 준비가 되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착 첫 해에는 엄살 좀 섞어 말하면 죽는 줄 알았다. 주인과의 갈등을 포함한 집 문제, 수도/전기 문제, 계속 고장나는 차와, 동료 선교사와의 갈등 등.. 연속적으로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들어간 지 6개월 즈음에는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찼다. 잠시라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짐을 싸서 도망치다시피, 새일/하리 부부가 있는 서부 사하라의 다클라를 향해 차를 몰아 국경을 넘었다. 

,2주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모리타니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좀 생겼다. 그 때는 모리타니아가 인간적으로 너무 싫게 느껴졌다. 나는 주님 부르심 따라 모리타니아를 향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왔는데, 이 나라는 왜 우리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가? 

그렇게 정착하는 1년이 지나고, 웬만한 문제에도 덜 놀래고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때가 되었다. 드넓은 모리타니아 곳곳을 차로 여행할 때에, 주님은 정착 첫 해에 받은 충격들을 Healing 하는 시간을 주셨다. 모리타니아의 너무나 아름답고 광대한 사막과 풍경들을 보면서, 모리타니아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때로는 힘들어도 주님께서 부르신 곳에서 사는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최선의 복된 삶인지 깨닫게 하셨다.

그렇게 우리 가정은, 이곳 부르신 땅에서 4년째 접어들며 살고 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하고, 이웃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는 결혼식에도 가보는 즐거운 때도 종종 있다. 반면 때로는 섭씨50도 가까이 육박하는 뜨거운 사막 열풍과, 우기 후 도는 전염병과 제한된 생활 환경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솔직히 나는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지, 처음부터 모리타니아를 너무 사랑해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 주님 부르심 따라 때로는 힘들어도 꾸역꾸역 버티다 보니, 모리타니아인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더 배워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 곳에서 외국인으로서 좀 황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도 나고 판단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님을 모르니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모리타니아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더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주님께서 모리타니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심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계속 이 땅에 증인으로 보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정은 다양하지만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 땅으로 보내신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선배들이 30여 년(모리타니아 선교 역사)의 개간과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도로 물을 주며 인내했던 시간을 거쳐, 열매들이 맺히는 소식을 듣는다. 모리타니의 무슬림들 중 주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귀임 전날 밤, 아들이 감정적으로 폭발해 버린 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는 반성을 하였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이 땅에서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아이들 특히 장남인 선이에게 여과없이 흘러가게 된 것도 상당부분 우리 책임이다. 아들이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는지, 충분히 공감해 주지 못한 것 같다. 제한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이 땅에서 정서적으로도 행복하게 지내도록 자녀들을 더 이해하고 배려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더불어 자녀들도 언젠가는 그들의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 ‘못나고 못난 모리타니아’에서 가족이 함께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복된 것이었는지 깨닫고 감사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위로